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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43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 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2020. 5. 4.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中 2020. 5. 1.
나선미, 사랑방 첫 손님 사랑방 첫 손님 ​ 나선미 ​ 부르지 않아도 찾아오는 이가 있다. 나는 부른 적이 없는데, 어느 밤 문득 창문을 두드리는 자. ​ 나는 네가 첫눈인 줄 착각하던 때도 있다. 마음이, 하도 설레기에. 2020. 5. 1.
김용택, 환장 환장 ​ 김용택 ​ 그대랑 나랑 단풍 물든 고운 단풍나무 아래 앉아 놀다가 한줄기 바람에 날려 흐르는 물에 떨어져 멀리멀리 흘러가버리든가 ​ 그대랑 나랑 단풍 물든 고운 단풍나무 아래 오래오래 앉아 놀다가 산에 잎 다 지고 나면 늦가을 햇살 받아 바삭 바삭 바스라지든가 ​ 그도 저도 아니면 우리 둘이 똑같이 물들어 이 세상 어딘가에 숨어버리든가 2020. 5. 1.
이창훈, 폭우 폭우 ​ 이창훈 ​ 지금껏 나의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 서서히 젖을 새도 없이 젖어 ​ 세상 한 귀퉁이 한 뼘 처마에 쭈그려 앉아 ​ 물먹은 성냥에 우울한 불을 댕기며 ​ 네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던, 2020. 5. 1.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 2020. 5. 1.
나선미, 별에게 별에게 ​ 나선미 ​ 별이 뭐가 예뻐, 한비짝에 훨씬 웅장한 달이 있는데, 별이 뭐가 근사하다는 거야. ​ 네가 근사한 사람들 속에서 말했다. ​ 별이 많긴 하지, 근데 유독 눈에 걸리는 별이 있단 말이지. ​ 내가 너를 보며 말했다. 2020. 5. 1.
서덕준, 휘청 휘청 서덕준 왜 이리도 징검돌을 허투루 놓으셨나요. 당신 마음 건너려다 첨벙 빠진 후로 나는 달무리만 봐도 이제는 당신 얼굴이 눈가에 출렁거려 이다지도 생애를 휘청입니다. 2020. 5. 1.
윤보영, 그리움이 깊다 보면 그리움이 깊다 보면 ​ 윤보영 ​ 가끔 아주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봤어. ​ 화분에 물을 자주 주면 뿌리가 썩는 것처럼 너무 많은 그대 생각에 혹 내 그리움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 하지만 이건 잘못된 생각일 거야. 그리움이 깊다 보면 바위에도 뿌리내리는 게 사랑이거든. 2020. 3. 28.
나희덕, 푸른 밤 푸른 밤 ​ 나희덕 ​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2020.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