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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글 | 너에게55

윤보영, 그리움이 깊다 보면 그리움이 깊다 보면 ​ 윤보영 ​ 가끔 아주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봤어. ​ 화분에 물을 자주 주면 뿌리가 썩는 것처럼 너무 많은 그대 생각에 혹 내 그리움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 하지만 이건 잘못된 생각일 거야. 그리움이 깊다 보면 바위에도 뿌리내리는 게 사랑이거든. 2020. 3. 28.
나희덕, 푸른 밤 푸른 밤 ​ 나희덕 ​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2020. 3. 28.
이병률, 백년 백년 ​ 이병률 ​ 백 년을 만날게요. 십 년은 내가 다 줄게요. 이십 년은 오로지 가늠할게요. 삼십 년은 당신하고 다닐래요. 사십 년은 당신을 위해 하늘을 살게요. 오십 년은 그 하늘에 씨를 뿌릴게요. 육십 년은 눈 녹여 술을 담글게요. 칠십 년은 당신 이마에 자주 손을 올릴게요. 팔십 년은 당신하고 눈이 멀게요. 구십 년엔 나도 조금 아플게요. 백 년 지나고 백 년을 한 번이라 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을 보낼게요. 2020. 3. 28.
김현태, 첫사랑 첫사랑 ​ 김현태 ​ 눈을 다 감고도 갈 수 있느냐고 비탈길이 나에게 물었다. ​ 나는 답했다. ​ 두 발 없이도 아니, 길이 없어도 나 그대에게 갈 수 있다고. ​ 2020. 3. 28.
이정하,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 이정하 ​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물처럼 고여들 네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나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2020.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