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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 2020. 5. 1.
나선미, 별에게 별에게 ​ 나선미 ​ 별이 뭐가 예뻐, 한비짝에 훨씬 웅장한 달이 있는데, 별이 뭐가 근사하다는 거야. ​ 네가 근사한 사람들 속에서 말했다. ​ 별이 많긴 하지, 근데 유독 눈에 걸리는 별이 있단 말이지. ​ 내가 너를 보며 말했다. 2020. 5. 1.
서덕준, 휘청 휘청 서덕준 왜 이리도 징검돌을 허투루 놓으셨나요. 당신 마음 건너려다 첨벙 빠진 후로 나는 달무리만 봐도 이제는 당신 얼굴이 눈가에 출렁거려 이다지도 생애를 휘청입니다. 2020. 5. 1.
안녕, 침대야 :) 기존에 사용하던 침대는 오래 사용하기도 했고, 자꾸 삐걱삐걱 소리가 나서 신경쓰이던 차에, 그가 퀸사이즈 침대를 새로 구매했다. ​ 침대를 배송받기로 한 토요일. 언제나 그렇듯 점심시간이 다 되어 눈을 뜨고, 밥을 먹고 나서 또 한참을 누워서 '주말은 힘들어어어' 하면서 흐느적거리다가 '이제 정말 움직여야해' 하며 반강제로 몸을 일으켰다. 기존 침대를 작은 방으로 옮겨 두고, 비워진 안방에 생각보다 먼지가 많아 로봇청소기를 가두어(;) 청소를 시켰다. 그리고 새로운 침대를 맞이했다. 침대야, 안녕. 보고 싶었어. 널 만나려고 일주일이나 기다렸어! ​ 우리 집에 있는 침대는 더블 사이즈인데, 퀸 사이즈 침대에 누우니 엄청 넓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블과 퀸, 퀸과 킹의 사이즈 차이는 고작 10cm.. 2020. 3. 28.
미세먼지 없는 날 주말이라 밖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우리는 늘 차를 타고 이동하는 편인데, 간만에 미세먼지가 없어서 걸어보기로 했다. 아파트 단지 옆 탄천길을 따라 십분 정도 걸으면 보정 카페거리에 닿는다. ​ 오리가 물 속에 머리를 담그고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최근에 시력이 많이 떨어져서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오리인가?" 라고 물으니 "응. 천둥오리." 라고 그가 대답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라식 수술을 해야겠다는 쌩뚱맞은 생각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 자전거와 퀵보드로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들이 우리 옆을 스쳐지나갔다. 산책을 나와 신이 난 강아지도 만날 수 있었다.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 틈에 섞여, 그와 손을 잡고 느긋하게 걸었다. 이런 시간은 정말 오랜만이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생각들과 구석에서 계속.. 2020. 3. 28.
윤보영, 그리움이 깊다 보면 그리움이 깊다 보면 ​ 윤보영 ​ 가끔 아주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봤어. ​ 화분에 물을 자주 주면 뿌리가 썩는 것처럼 너무 많은 그대 생각에 혹 내 그리움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 하지만 이건 잘못된 생각일 거야. 그리움이 깊다 보면 바위에도 뿌리내리는 게 사랑이거든. 2020. 3. 28.
나희덕, 푸른 밤 푸른 밤 ​ 나희덕 ​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2020. 3. 28.
이병률, 백년 백년 ​ 이병률 ​ 백 년을 만날게요. 십 년은 내가 다 줄게요. 이십 년은 오로지 가늠할게요. 삼십 년은 당신하고 다닐래요. 사십 년은 당신을 위해 하늘을 살게요. 오십 년은 그 하늘에 씨를 뿌릴게요. 육십 년은 눈 녹여 술을 담글게요. 칠십 년은 당신 이마에 자주 손을 올릴게요. 팔십 년은 당신하고 눈이 멀게요. 구십 년엔 나도 조금 아플게요. 백 년 지나고 백 년을 한 번이라 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을 보낼게요. 2020. 3. 28.
김현태, 첫사랑 첫사랑 ​ 김현태 ​ 눈을 다 감고도 갈 수 있느냐고 비탈길이 나에게 물었다. ​ 나는 답했다. ​ 두 발 없이도 아니, 길이 없어도 나 그대에게 갈 수 있다고. ​ 2020. 3. 28.
이정하,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 이정하 ​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물처럼 고여들 네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나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2020.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