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라 밖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우리는 늘 차를 타고 이동하는 편인데, 간만에 미세먼지가 없어서 걸어보기로 했다. 아파트 단지 옆 탄천길을 따라 십분 정도 걸으면 보정 카페거리에 닿는다.
오리가 물 속에 머리를 담그고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최근에 시력이 많이 떨어져서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오리인가?" 라고 물으니 "응. 천둥오리." 라고 그가 대답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라식 수술을 해야겠다는 쌩뚱맞은 생각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자전거와 퀵보드로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들이 우리 옆을 스쳐지나갔다. 산책을 나와 신이 난 강아지도 만날 수 있었다.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 틈에 섞여, 그와 손을 잡고 느긋하게 걸었다. 이런 시간은 정말 오랜만이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생각들과 구석에서 계속 뜨끔거리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다.
문득 궁금해진 것이 있어서 그에게 물었다.
"결혼을 하면 해보고 싶은 소소한 로망이 있어?"
"돈을 많이 벌어서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어."
"얼마나 벌어야 하는데?"
"30억 정도 있으면 돼(?)"
나에겐 그의 로망이 전혀 소소하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되면 정말 근사하겠다고 생각했다. 사막에다가 텐트를 치고 나란히 누워 하늘을 가득 메운 별을 보는 상상, 우리는 아마 안반데기를 떠올리며 깔깔 웃을거야. 에메랄드빛 바다 위에서 스노쿨링을 즐기며 예쁜 물고기들을 찾기도 하고, 하루종일 유럽의 거리 구석구석을 종종거리며 걷기도 하고.
그와 함께 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다. 그것이 내가 지금 그의 손을 잡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나에게는 되묻지 않아 굳이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말했다.
'이렇게 둘이 함께 손을 잡고 느긋하게 걷는 거. 이게 내가 늘 바라는 로망이고, 제일 큰 행복이야.'
언제까지나 이 시간이 계속되기를. 삶이 힘들고 고된 순간에도 우리 맞잡은 손으로 서로의 온기를 전할 수 있기를.
2019년 3월 9일 토요일, 미세먼지 없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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